고슴도치의 우아함

2019. 12. 29. 23:27뒷북리뷰

 

뮈리엘 바르베리_류재화 옮김, 문학동네(2015.10.30)

 

  우연히 EBS라디오에서 성우들의 연기를 듣고 읽게 된 책이다. 뮈리엘이라는 작가는 참 현란한 필력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현란한 필력을 가져보려고 아둥바둥했던 17세 시절이 떠올랐다. 요즘말로 하면 드립력, 그런데 고급진 드립력이다. 다시 그런 고급진 드립력을 가져보고 싶다. 뮈리엘 덕분에...

 

  너무 띄엄띄엄 책을 읽다보니 이제 중반을 넘어섰는데, 그 귀절중에 느끼는 바가 크고 다른 나라의 삶의 단면이지만 다를바 없는 우리의 모습인 것 같아 발췌해본다.

 

심오한 사고 N˚ 8

-  만일 네가 미래를 잊는다면
너는 현재를 잃는다. - 

 
오늘 우리는 조스 할머니, 그러니까 우리 아빠의 엄마를 보러 샤투에 갔다. 할머니는 2주 전 그 곳의 한 양로원에 들어갔다. 할머니가 처음 입주할 때 아빠가 같이 갔었고, 이번에는 우리 식구가 다 함께 갔다. 할머니는 샤투의 대적택에서 더이상 혼자 살 수 없었다. 할머니는 거의 앞을 못본다. 관절염이 있고, 손에 뭐라도 잡지 않으면 걷지도 못해 혼자 계시기만 하면 무서워하셨다. 할머니의 자식들, 그러니까 우리 아빠, 삼촌 프랑수아, 고모 로르는 간병인을 구해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지만, 간병인이 스물네시간 내내 옆을 지킬 수도 없었다. 이미 할머니 친구들이 양로원에 들어가 있었고, 그렇다면 그게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할머니가 살고있는 양로원은 실로 대단했다. 그 호화로운 죽음의 대기실이 한 달에 도대체 얼마나 할지 궁금했다. 할머니 방은 크고 밝았다. 멋진 가구에, 멋진 커튼, 한 곁에 딸린 작은 살롱 하나와 대리석 욕조가 있는 욕실. 엄마와 콜롱브는 대리석 욕조 앞에서 넋이 나가 있었다. 할머니보다 대리석 욕조에 더 관심있는 사람들처럼. 게다가 대리석은 심미적으로도 영 별로였다. 아빠는 별말을 안했다. 자기 엄마를 양로원에 모시는 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다. 둘 다 나한테 안들리는 줄 알았을 거다.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 말들은 더 잘 들린다. "그래, 물론 그건 아니지." 아빠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말하는 톤은 사실 이런 뜻이었다.  " '그건 아니지' 하고 말은 하지만 지치고 체념한 듯한 어조로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척하기. 그래야 부인 말을 잘 따르는 좋은 남편같고, 아들로서 제 역할을 하는 거 같으니까." 나는 아빠의 이 톤을 잘 안다. 그건 또 이런 뜻이기도 하다. "난 내가 맥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뭐라 못한다는 것도 알지." 아니나 다를가. 엄마가 개수대에 행주를 신경질적으로 던지며 말했다. "당신 진짜 맥없는 사람이야." 엄마는 화만 나면 뭔가를 던지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한번은 야용이 헌법이를 던진 적도 있다. 엄마는 행주를 다시 챙겨 아빠 코밑에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나보다 더 의욕이 없는 거 같다. " "어쨌든 다 결정된 일이야." 아빠가 말했다. 그건 열 배는 더 맥빠지는 소리였다. 

  

  나는 할머니가 우리랑 살지 않는 게 정말 좋다. 물론 할머니랑 산다고 해도 400제곱미터 안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래도 노인들은 공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양로원에 사는 건, 그건 확실히 공경이 끝났다는 거다. '난 끝났다. 난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이거 하나 밖에 기다리지 않는다. 죽음. 권태의 슬픈 종말.' 아니다. 할머니가 우리집에 오는 게 싫은 이유는 내가 할머니를 좋아하지 않아서다. 할머니는 진짜 못된 노인이다. 젋었을 때부터 그랬다. 난 이 역시 심히 부조리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이제 나이가 든 착한 보일러 공이 있다고 치자. 그는 젊었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한테 좋은 일만 했고, 사랑을 주고받고 인간적이고 정겨운 관계를 맺어가며 사랑을 창조할 줄 알았다. 그의 부인이 죽었고, 자식들은 돈이 없다. 그 자식들 역시 딸린 자식들이 많아 먹이고 교육시키기에도 빠듯하다. 게다가 이 자식들은 아주 먼 데 산다. 그래서 그 할아버지는 고향 근처에 있는 양로원에 들어가고, 자식들은 일 년에 두어 번 찾아온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양로원에서는 서로 방을 같이 써야 하고, 음식은 역겹고, 직원은 언젠가 자기도 이곳 거주자들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을 알면서도 그 확신과 싸우기라도 하듯 그들을 학대한다. 이제 우리 할머니 예를 들자. 할머니는 당신 인생에 끊일 날 없는 사교모임, 짜증, 꼼수, 쓸데없고 위선적인 소비 이외에는 다른 건 한 게 없는 분이다. 그런 데 그런 멋 잔뜩 부린 방에 , 개인 살롱에, 점심때는 생자크 가리비 조개를 먹는다고 생각해보라. 불결한 공동생활속에 희망없이 삶을 마감해야하는 것이 사랑을 베픈 대가란 말인가? 무지무지한 돈을 들여 마련한, 대리석 욕조 딸린 방이라니, 이게 애정 거식증의 보상이란 말인가?

 

  따라서 난 할머니를 하나도 안 좋아하고 할머니도 나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할머닌는 할머니한테 잘하는 콜롱브를 아주 좋아한다. 유산을 생각지도 않는 척 아주 바람직한 초연함을 보이지만 실은 유산을 엿보고 있는데 말이다. 난 샤투에 가는 날이 반드시 고역의 날이 될 줄 알았다. 대리석 욕조 앞에서 비명을 지르는 엄마와 콜롱브, 죄책감에 완전히 경잭된 아빠, 링거를 꽂고 복도를 배회하는 말라빠진 늙은 환자들, 또 어는 미친 할머니를 보았다. "알츠하이머네." 콜롱브는 의사 같은 말투로 말했다. 전혀 웃지도 않으면서. 이 할머니가 글쎄 날 "이쁜 클라라"라고 부르더니만 곧바로 자기 개를 내놓으라며 하마터면 굵은 보석 반지를 낀 손으로 내 눈을 찌를 뻔했고, 심지어 탈출까지 하려고 했다. 그곳 입소자들은 손목에 전자 팔찌를 찬다. 벽을 넘어 탈출하려고 하면 삐 소리가 나 안내실까지 전달되고, 그러면 직원들이 밖으로 튀어나아 도망자를 잡는다. 힘들게 100미터 달아난 도망자는 여긴 강제수용소가 아니라며 저항한다. 양로원장과 직접 면담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이상하게 몸을 비틀다가 결국 휠체어에 강제로 앉혀진다. 결승점 가까이에서 속도를 높였지만 결국 잡히 그 할머지는 점심식사 후에는 일종의 탈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치마 밑단에 장식이 많은 물방울무늬 원피스였는데, 담당을 오를 때 나름 유리할 거 같았다. 요약하자면 오후 두시가 되자 대리석 욕조 생자크 가리비, 에드몽 당테스*의 탈출쇼 기타 등등으로 난 절말에 푹 절어 있었다.

   ***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이프 성에서 극적인 탈출은 한다. 

 

  그러다 문득 나는 건설할 결심을 했지 파괴를 결심을 한게 아니라는 것이 생각났다. 난 긍정적인 거을 찾으려고 하면서, 콜롱브를 최대한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것 말로는 할 게 없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콜롱브가, 그래, 콜롱브가 나에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할머니에게 인사하면 곧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양로원을 떠나면서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됐어. 할머니가 잘 자리잡은 거 같아 이제 남은 건, 빨리 서둘러 잊는 거야." 빨리 서둘러 잊는다? 그래 그 말 자체를 트집 잡지는 말자. 그러면 진짜 쩨쩨해진다. 빨리 잊자? 그래 그 생각에 집중하자.

 

  하지만 이건 잊어선 안된다. 몸이 썩어가는 노인을, 젊은이들은 생각하기도 싫어하는 죽음을 옆에 둔 노인을 잊어서는 안된다. 죽음이 싫으니 소리소문 없이 부모를 양로원에 데려가 그 일을 맡기는 것이다. 있으나마나 한 기쁨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즐겨야 할 인생의 이 마지막 시간을 그저 권태와 쓸쓸함과 지겨운 되풀이만을 채운다. 육체는 소멸하고, 친구들은 죽고, 모두가 당신을 잊는다는 것을, 끝은 고독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이 노인들도 젊었던 때가 있었음을, 인생의 시간이란 가소로운 것임을, 스물이 엊그제 같아도 내일모레면 여든이 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콜롱브는 서둘러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늙는다는 게 자기하고는 아주 먼 이야기니까. 그 시간이 결코 자기한테는 안 올 줄 알겠지. 내일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너무나 바쁘고, 마감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현재에 너무나 탐욕적인 주변어른들을 보면서 난 인생은 눈 깜빡할 새 지나간다는 걸 이미 깨달았다. 내일이 의심스러운 것은 현재를 건설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를 건설할 줄 몰라서 내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내일은 또다른 오늘이 되어버리고 결국 아무것도 안 된다. 안 그런가?

  

  따라서 이 모든 걸 잊으면 안된다. 우린 늙을 것이고, 그건 아름답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유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지금, 무엇이든 건설해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온 힘을 다해. 매일 자신을 초월하고, 하루하루를 불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양로원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에베레스트 산에 한 발씩 오르면, 그 한 발 한 발이 조금은 영원한 것이 된다. 

  

  미래는 살아 있는 자들의 진정한 계획들로 현재를 건설하는데 쓰이는 것이다. 

 

- 발췌 : 고슴도치의 우아함, P. 173 ~ 179 -

 

 

링크 : 노인장기요양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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