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

2018. 2. 17. 02:02뒷북리뷰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

댄 핸콕스 지음/위즈덤하우스/'14.3.31/288쪽

원서 : The Village Against the World

스페인 마을 공동체 마리날레다

<The village against the world>


세상에 맞서 싸우는 마을 마리날레다
직접 민주주의, 협동조합, 

실업률 0%, 무상 주거, 무상 의료…… 
이 마을에서는 꿈이 아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인구 2700명의 작은 소도시 마리날레다Marinaleda. 이곳 사람들은 대지주의 수탈에 맞서 12년간 한여름에 매일 16킬로미터를 행진하고 단식 투쟁을 통해 땅을 얻어 내는가 하면, 스페인을 강타한 경제 위기에 저항하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턴다. 



  자본의 힘이 개인과 사회의 존재 방식을 폭력적으로 강압하는 오늘날, 이 이상한 마을은 연대와 우정의 가치로 그 강압에 저항하고, 원하는 것을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2016년 6월 학회에 참석했다가 박사님의 발표를 듣고 더욱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에 구매했다. 21세기에 추구해야할 가치에 대한 것을 연구하신 박사님은 그해 학위를 취득하셨는데 논문도 논문이지만 박사님이 영감을 많이 받으신 그 마을이 필자도 궁금해졌다. 

  


   이 책을 읽은 시점(2018. 2월)은 발행년도(2014)에서 또 IT기술 발전 속도록 10만광년 이상 떨어진 시기였다. 그래서 카테고리 이름도 바꿨다. 뒷북리뷰... 귀에 착착 감긴다. 필자의 글을 읽어보신 분들을 다 아시겠지만 오늘도 역시 인상깊었던 부분 위주로 소개한다. 그럼 이제부터 뒷북 리뷰어 작업을 시작한다. 


라몬 카사르 이 카르보 무도회 이후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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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2700명의 마을 마리날레다 신민들은 마을의 규모에 비해 다섯 배 이상 레저를 즐길 기회와 시설이 있는데,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을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보상일까?


  전자라고 주장하면 건강하지 못한 수준의 냉소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주의의 상징인 '빵과 장미'에 대한 분명하고도 진정한 이데올로기적 헌신이 있다. 

  

  '빵과 장미'는 제인스 오펜하임의 동명의 시에 나오는 말로, 그 시에서 가장 중요한 행은 아래와 같다.


 "몸도 마음도 굶주린다네

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러나 장미도 달라!"


  1980년대의 투쟁은 토지를 위한 것이었지만 문화와 정신의 양식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배 못지않게 정신도 부르기 위한 것이었다. 기쁨도 인민의 권리라고 산체스 고르디요는 자주 말했다. p.158



  산체스 고르디요는 이를 두고 안달루시아가 일종의 각성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이 행사는 시청에서 마을을 찾은 수천수만 명에게 비디오로 중계되었다. 산체스 고르디요는 모인 사람들에게 인사말을 하며 예의 그 속사포 같은 속도로 꿈과 정의에 대해, 시급히 유토피아적 이상과 우울한 현실의 간극을 메울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인사말을 마무리하며 체의 말을 인용했다. "꿈을 꾸는 사람만이 언젠가 그 꿈이 현실로 바뀌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러고는 덧붙이기를 다른 세상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치 그런 세상이 이미 와 있는 것처럼 사는 용기가 필요한 때라고 했다. 



  내가 그해 겨울에 산체스 고르디요를 인터뷰했을 때에도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시의 세계관에 대해 완전히 확신했고, 그들이 창조하고 있는 세상과 바깥세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굳게 믿었다. 충분히 인정해도 좋을 정도로 그의 분석에는 승리주의의 기색이 없었다. 그것은 엄격했고 냉철했다.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모든 것을 바로잡는 전능한 신이라는 자본주의 신화가 무너졌어요. 우리는 이것이 거대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터무니없는 근본주의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위기가 닥치면 시장이 국가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보았고, 국가가 은행에 돈을 퍼붓는 것을 보았습니다. "



  국가는 수천 억 유로를 쏟아 부었다. 스페인 부채의 75%가 민간 부채다. 스페인에 위기를 낳은 과도한 공공지출은 없었다. 2008년 스페인 재정은 유로존의 재정 준칙을 잘 지키고 있었고,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도 독일보다 훨씬 낮았다. 처음부터 그랬고, 계속 그런 상태가 유지되었다. 스페인에서는 붕괴가 부채를 낳았지 부채가 붕괴를 낳은 것이 아니다. 



  "세상에 정의가 있다면, 거대 은행들과 그들이 경제적 테러를 하도록 허용한 정부들이 감옥에 있을 겁니다. 바로 그들이 위기를 낳았는데, 지금 그들이 위기를 바로잡고 싶답니다. 방화범이 소방관 역할을 하고 싶답니다! 메르켈과 사르코지가 은행을 대변하고 은행이 초래한 것을 고치고 싶답니다." p.224 ~ 226


산체스 고르디요,

그는 누구인가?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가 있따. 1952년생인 그는 역사 교사경력도 있으며, 정치가이자 노동자 단결을 위한 집단-안달루시아 좌파연합(CT-BAI) 대표이다. 그는 이미 감옥에 일곱번이나 갔다 왔고 파시스트들의 암살 위협에서 두번이나 살아남았다. 한마디로, 그는 '목숨 걸고' 산다.


  "나는 비폭력을 신봉하고, 공동체가 싸울 때도 비폭력적 수단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권력은 건들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우리가 건들면 폭력을 쓰지요. 부르주아지는 자기 호주머니를 건들지 않을 때만 민주주의에 찬성합니다." 목숨 건 투쟁에서 깨달은 바다.



  1979년 그가 시장으로 선출된 시기는 영국에서 대처가 수상으로 선출된 시기와 일치한다. 대처가 '대안은 없다'며 기존의 복지 국가 대신에 신자유주의 세계화만이 살 길이라 외치던 바로 그때, 고르디요는 '더 나은 세상을 창조하는 꿈'을 말하기 시작했다.


   '대안'을 갈구하던 숱한 사람들, 특히 시장으로부터도 국가로부터도 소외되었던 빈민들은 고르디요의 대안적 행위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동참했다.  



  2011년의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낫과 망치의 공산당에 가입한 적은 없지만, 공산주의자 또는 공동체 주의자입니다. "라고 했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은 그리스도와 간디, 마르크스, 레닌, 체 게바라가 뒤섞인 것에서 왔다고 한다. p. 277~278



  신 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99%의 희생위에) 전 세계를 무대로 돈벌이를 하는 극소수 1퍼센트의 탐욕과 축제에 정면 도전하여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쟁취하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고르디요와 그 동료들은 '반세계화 운동'의 또 다른 상징이 되었다. 


  이들은 1퍼센트의 특권층과 그 동조자들이 가진 '미사일 단추 신드룸', 즉 수 많은 생명을 죽이면서도 아무 죄책감이나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을 건드렸다. 실제로, 이들은 투쟁과정에서 "식량은 권리이지 장사하는 것이 아니다. 농업은 세계무역기구에서 빠져야 한다."라고 외쳤다. 


  이들의 단호한 투쟁은 결코 한 두 해에 그치지 않았다. 무려 35년 이상 그들은 쉼 없이 투쟁하며 공항과 기차역, 정부 청사, 농장, 궁전을 점거하고, 길을 가로막고, 행진하고, 팻말 시위를 하고, 또 단식 투쟁도 여러 차례했다. 물론 이 모든 노력에도 그들은 수없이 구타당하고 체포되고 재판을 받아 투옥되기도 했다. 


* 구직을 포기한 스페인 청년 시위


  당시 투쟁에 참여한 한 주민의 기억이다, "우리가 처음 여기로 시위하러 왔을 때가 여름이었어. 무척 더웠지. 그런데 치안대(용역깡패)가 나뭇가지를 모두 잘라 버렸어. 우리가 해를 피할 곳이 없게 말야." 


  여기서 중요한 것을 패배할지언정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금 서로를 껴안고 위로하고 토론하고 대화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가운데, 그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고 다시 용기를 내 일어설 수 있었다. 풀뿌리의 생명력이다. 



  "'투쟁'은 빈곤과 정망에서 나왔어도 심장에 불을 질렀다. 아주 짜릿했다. 그런 독특한 종류의 에너지는 자신이 정당한 일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 때만, 그리고 어쩌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 때만 얻을 수 있다." 책의 저자 핸콕스의 통찰이다.


  마리날레다는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라고 외치며 여전히 "평화를 위한 투쟁중"이다. 고르디요는 그 왕성한 운동의 한 구심이다. 



  "우리는 우리가 미래에 원하는 것을 지금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내일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가능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본보기가 됩니다. 정치를 하는 다른 방법, 경제를 하는 다른 방법, 함께 사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 다른 사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본보기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독특한 역사인식이요 실천 이성이다. p.279~282


마을 유토피아의 의미와 가치



  첫째. 빈민이 스스로 빈곤을 극복하는 주체적과정. 고르디요가 말했듯이 "엘리트의 권력은 그들이 자신을 좌파라고 할 때에도 언제나 독재"이다.  저 높은 그곳 또는 밀실에 존재하는 권력이 국민을 통치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렇다고 시장 경쟁을 민주주의라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이런 것이 빈곤이나 불안과 같은 삶의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음을 그들은 이미 역사속에서 잘 안다. 민초들이 스스로 나서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 촛불집회 - 오충영 작가


  둘째. 그런 주체들은 과연 어떤 수단으로 투쟁했을까? 그들은 말로만, 또는 선거를 통해서만 변화를 꿈꾸진 않았다. 그렇다고 레닌 방식으로 무기를 든 것도 아니다. 그들이 취한 투쟁수단은 '온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들으 굶주림에 맞서 단식 투쟁을 했고 무수히 점거를 했으며 피켓을 들고 파업을 하거나 시위를 했다. 



  그러나 이 과정은 결코 '진공'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늘 상대가 있고 힘의 관계가 역동적으로 작동했다. 민초들이 땅을 점거하면 그들은 쫓겨났다. 쫓아내면 나갔다가 다시 점거했다. 잡히면 갇혔다가 다시 나오면 저항했다. 법이 있긴 하나 그것이 삶을 억압한다고 판단하면 그들은 과감히 법을 어겼다. 


  국가보조금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그에 머물지도 않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나 마하트마 간디 식의 '비폭력 불복종' 원칙을 철저히 견지했다. 국가 폭력이 짓밟으면 쓰러졌다가도 풀처럼 다시 일어섰다. 열 번 넘어지면 열한 번 일어났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원리, '이길 때까지 싸우면 이긴다'는 원리를 그들은 직접 실천했다. 불굴의 정신이요 저항의 미학이다. 


  셋째.  그 빈민들이 추구한 해결점은 지주나 은행, 회사난 슈퍼마켓의 주주처럼 '부자되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약탈자'가 되기를 거부했다. 우리는 대부분 강자는 부자를 미워하면서도 닮아 가는 오류를 범한다. 그래서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은 지연된다. 그러나 그들은 '강자 동일시' 대신 '이웃 동일시', 즉 연대와 동지애로 충만하다. 힘들어도 함께 헤쳐 나가는 과정이 삶의 기쁨이요, 보람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극소수의 억만장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을에서 굶주리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소박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협동조합 농장에서 경쟁의 가치보다 협동의 가치로 일하고, 집을 함께 짓고 운동/축제/술/음악/춤을 즐기며 음식과 대화를 나눈다. 



  재산 증식보다 필요 충족에 의미를 둔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총회장에 모여 직접/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결정을 내리고 참여 속에 실행한다.


 그들은 또한 '빵과 장미'를 동시에 원했다. 빵은 몸을 위한 것, 장미는 정신을 위한 것이다. 빵은 일과 밥을, 장미는 사랑과 축제와 자유를 상징한다. "기쁘지 않으면 축제를 할 수 없다. 일이 없으면 절망과 체념뿐이다. " 놀랍게도 마리날레다의 바에서는 위그필드의 <세터데이 나이트>뿐 아니라 싸이의 <강남 스타일>도 울려퍼진다. 



  사람들은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운동장이나 수영장에서 즐겁게 운동을 한다. 억압과 착취가 없는 곳, '강자 동일시'가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사람의 몸과 마음은 자유롭다. 사람 냄새가 난다. 이런 관계들 속에서 물질적 수준의 향상은 시급한 과제가 아니다. 그저 필요에 맞게 하나씩 만들 뿐이다. 



  천천히 가더라고 서로 마주보며 웃을 수 있다. '탈(脫) 성장' 또는 '반(反) 성장' 시대에 필요한 대안이다. 참된 대안은 아래와 같을 때  실현 가능성이 가장 크다.


(1) 돈이 별로 들지 않고 

(2) 주변에 해를 덜 끼치며 

(3) 두려움이 아니라 즐거움 

위에서 함께 움직일 때 



  바로 이런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간디가 "인도의 장래를 위해서는 70만 개의 마을 공화국이 필요하다"라고 했을 때 바로 그 마을 공화국 모델이 스페인에서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마리날레다가 아닐까 싶다. p.282~286

* 출처 :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 해제 "경쟁의 가치보다 연대의 가치로 사는 공동체" 발췌. p.268~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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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읽었던 책과는 달리 이 책은 읽는 진도가 정~~~말 나가지 않았다. 3인칭 관찰자시점으로 8년간 마리날레다 마을과 산체스 고르디요를 인터뷰하고 바라본 경과를 담담하게 그려내 평전같으면서 다큐멘터리 같은 이야기를 필자는 평큐멘터리(세미평전 및 다큐멘터리)라 명명하겠따. 자꾸 진도가 나가지 않자 필자는 책에게 '어쭈~ 요것봐라~ 내가 못 읽을 줄 알아?' 라는 오기를 발동하여 연휴간 다 읽자마자 써내려 뒷북리뷰 쓴다. 켁~  


  권력... 우리는 2017년 촛불로 한번 맛보았는데... 우리도 이제 시작인데 세계의 물결은 모두 이것을 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을 우물에서만 찾았으니 항상 양날과 같은 것이다. 부족하지만 끌고가는 것 늦게 가더라도 함께 가는 것....



  전 세계가 아마 이 양날 덕분에 몸살을 앓고 있고 치유하고, 치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필자 또한 근본을 해결하려고 반항하며 만든 결과물과 이 책처럼 현상을 지연시킨 덕분에 인생 2막을 준비하게 되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게 그렇제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위로를 받는다. 단지 나와 잘 맞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풀뿌리의 참여, 비폭력, 빵과 장미... 필자는 어머니가 생활하시는 주변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흐믓하다. 같이 아파트 단지 헬스장에 가고, 맛있는 것 좋은 것들을 싸가지고 와서 나누고 퍼주고 또 받고... 다른 어머니들의 요리솜씨를 맛볼때마가 감탄하며 맛있게 먹는 것은 과연 불효인가? 어머니의 네크워킹과 감성 교류인가.... ㅋ~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어머니도 작게는 마리날레다 공동체처럼 살아가고 계시는데.... 적어도 생활반경에서는 말이다. 어쩌면 인간은 그런 본능과 본성을 프로그램 입력값으로 갖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뜻대로 서로 돕고 살라고 하시며 세상과 인류를 창조하셨다는데... 



  인류... 달려도 너무 달렸다. ㅋㅋ~ 인물 평전도 다큐멘터리만도 아닌 요~ 아리까리한 책! 대한민국의 미래와 참여정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거품을 걷어내고 공산주의와 독재에 대해 다시 정의하며 정치와 경제도 미니멀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 정돈하여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써야 할 때다. 


  그나저나 산체스 어르신 올해로 69세이신데 이 책이 집필된 당시에 건강이 많이 안좋아지신것 같다. 훌륭한 조직은 리더가 없어도 잘 굴러간다는데, 역시 책임지고 밀어부치는 일은 리더가 있어야 함을 느끼며 모두가 산체스 어르신의 회복과 복귀를 기원하지만 또 다른 곳에선 제2,3의 산체스 어르신과 같이 심장이 쿵쾅거릴 것을 믿으며...


  4차 산업혁명시대!! 21세기를 더 멋지게 도약시키고자 그 방향을 탐색하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미니멀라이프 #참여형 공동체 #대안 

#지속가능한성장 #평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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